제목은 <최종병기 활>인데 내용에는 활이 별 비중이 없다. <신기전> 같이 병기로서의 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무사> 같이 활을 멋있게 쏘는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각본, 연출, 미술, 음향, 연기..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수준이 낮아 매우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보는 내내 제일 괴로웠던 점은 심각하게 어색한 연기였다. 남이가 아닌 박해일이, 쥬신타 아닌 류승룡과 싸우는 모습을 2시간동안 보는 것은 두 배우의 지인들에게나 재미있을까, 시대극 영화를 보고싶었던 관객에게는 하나도 재미 없는 고문이었다. '문채원 역을 맡은' 자인낭자 역시 마찬가지.
안그래도 미술, 대사, 카메라..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어설퍼 현실성(핍진성)이 안 느껴지는데, 결정타를 날린 건 성의 없는 만주어 대사였다. 만주어가 성조가 있는지 강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만주어를 들어본 적 있는 한국 영화관객은 없을 것이므로 중요한 건 고증보다 얼마나 그럴싸하게 느껴지느냐일 것이다. 마을을 짓밟고 조선 사람을 노예로 잡아가는 '오랑캐' 만주족의 낯설고도 거친 느낌을 과장해서라도 전달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배우들은 만주어 대사를 완벽한 한국어 억양으로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도 감정을 싣지 않고 운율마저 넣지 않아 마치 읽기 싫은 국어책 억지로 읽는 듯한 말투였다. 구구단이나 원소 주기율표를 외우더라도 운율감은 살아 있는게 인간의 언어일진대, 이건 그냥 대사집에 한글로 적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읽는 티가 너무 심하게 났다. 특히 류승룡 역의 쥬신타 씨가 제일 심했다.(배우의 잘못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연기든 무엇이든 결국 감독의 역량이다.)
스토리도 개연성이라든지 현실성이라든지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어서 보는동안 계속 울컥울컥 짜증이 났다. 개중에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우선 감독이 민중봉기 페티시라도 있는지 끌려가던 조선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청군을 제압하는 장면. 야.. 억지도 이런 억지가 있나. 맨몸에 남녀노소가 섞인 무리가 중무장한 정규군을 상대로 참 잘도 싸우는구나. 청나라 무기는 종이로 만든 무기인가보다. 막바지 류승룡의 인질극 장면도 못지않게 황당했고, 제일 압권은 호랑이였다. 아동극에도 이런 편리한 기계장치의 신은 안 나오는 법이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흥행하려면 꼭 작품을 잘 만들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 보여주었다. 배급망을 통제해 상영관 수와 상영기간을 확보하고 대작인 것 같은 그럴싸한 판촉에만 성공하면,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 수준이든 심형래 수준이든 상관없이 수백만명이 보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같은 위업을 이룬 영화로 <괴물>과 <디워>가 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두 작품을 모두 영화관에 가서 보았다...
진짜 '최종병기' 활을 보고싶은 영화팬에게는 <무사>를 추천한다. 원말명초의 동양을 배경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화끈하고도 '실감나는' 전투장면으로 가득 채운 영화다. 전투장면 구성이나 배우들의 무술연기에서 다른 숱한 전근대 전쟁영화나 액션영화에서 같은 과장되거나 어색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한 장면 창으로 무협지를 찍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궁수(안성기 役)가 싸우는 장면은 정말로 멋있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본 모든 전쟁/액션영화 중 가장 멋있는 장면으로 꼽는다.
# 글 올리자마자 자동 트랙백이 걸리는 글이 있어 읽어보았다. 최종병기 활을 저런 작품과 한데 묶다니 너무했다. 아무리 영화 홍보차 쓰는 글이래도 명작 능욕과 졸작 미화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라스트 모히칸>이라는 영화를 알게 해준 점은 고마워해야겠다. <패트리어트>, <10,000 BC>, <아포칼립토>와 같이 언급한 걸 보면 좋은 영화일 것 같다. 꼭 봐야지.
- 2012/01/0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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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서민(庶民)의 알레고리 2012/01/05 11:40 #
[최종병기 활, 2011] &n...... more





덧글
. 2012/01/05 19:16 # 삭제 답글
심히 동의합니다. 총체적으로 너무 허접해서 실망했는데, 대박 흥행에 호평이 끊이지 않아서 신기했죠.
지나가다 2012/03/13 19:54 # 삭제 답글
저 역시 동감 동감 동감